장애인이 왜 안 좋은 것인가? ②
입력:2008-12-30 화
그래서 사람이 병신계나 장애인계로 들어서게 되면, 정상인들은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낼 일에도 별로 화가 나지 않게 되는, 현실과 좀 많이 다른 인식체계가 갖춰 지게 되는 것 같다. 병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느끼게 되는 짜증, 우울함, 고통, 불편함등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느라 많은 힘이 집중되기에 화로 나갈 여분의 힘이 별로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을 게다. 워낙 시달려서 지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병신, 장애인이 되어 느낀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 치욕, 혹은 타인에 의한 모멸감, 치욕이 워낙 강도가 세다보니 정상인들이 모욕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병신, 장애인은 코웃음~치면서 속으로 "참, 호강에 받친 소리하는구나", "나도 저런 걸 모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병신, 장애인들은 정상인들은 결코 넘볼 수 없는 어떤 경지에 도달한 부류라고 봐야.(안 그랬다간 "왜 나만~"이라는 생각에 분노에 파묻혀 100% 자살로 골인하게 된다)
게다가 병신, 장애인은 가족에게 민폐만 끼치는 존재일 확률도 높을 거기에 웬만한 철판이 아니고선 주위에다 뭔가를 제대로 요구할 수 있는 자존감, 당당함을 갖추기가 힘들다.(은둔형외톨이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고로 저런 요구의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꽤 힘들기도 하리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어야 뒷날에 배탈이 없고, 싸움도 해 본 놈이 해야 뒷날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신에게 별 피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래서 병신, 장애인들이나 체득할 수 있는 이런 인내를 정상인이 체득한다면 그 사람은 어딜가도, 성공할 확률이 월등히 높아질 뿐만 아니라 행복감은 항상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모욕의 관점
치료가 불가능한 병, 복구가 불가능한 신체적 결함, 즉 장애로 인해 자신의 삶이 처참하게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딱 이런 경우라고 해야 하리라. 이 사람은 자신의 그 망가진 삶에 대해 복수 할 곳이 없는 처참, 비루 그 자체의 삶인거다.
거참, 자신을 무력하게 만든 원인인 이 병에 얼마나 한이 사뭇쳤으면 이런 생각까지 다할까 싶다.ㅋㅋㅋ 병때문에 삶의 목표가 있을 수 없었고, 그 병이 누구의 잘못으로 인한게 아니니 복수할 대상까지 없어 절망, 좌절, 우울, 무기력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이 삶이 어지간히도 원통했었던 모양이다~ 푸하하~ 캬~ 확실히 내 자신에 대한 성찰은 정말 기똥차게 정확하게 했다는 생각이...(그런데 이런 자기성찰 백날 하면 뭐하나, 이딴 거 안해도 좋으니 제발 정상인으로 좀 만들어 주라ㅋㅋㅋ)
내가 앓고 있는 이 병이 치료가 되는 병도 아니니 돈 벌어 정상인이 되겠다는 목표도 불가능했기에나는 이 병이 선사하는 절좌우무(절망,좌절,우울,무기력)에 빠져 희망도 목표도 없이 비루하게 지내왔다. 내게 복수할 대상이라도 있었으면 열정을 가지고 복수의 칼을 갈았을 테고, 그럼 삶이 그렇게 절망, 좌절, 우울, 무기력에 빠지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이들어 지금 생각해 보면, 비록 절좌우무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복수의 칼만을 가는 게 삶의 유일한 목표, 희망이었던 인생이 나의 절좌우무의 인생보다 우등한 것같진 않다. 아, 이런 온화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게 늙음의 미학이다...(젊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아무러 희망, 목표도 없이 정말 그 절망, 분노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정말 놀랍기만 하다. 확실히 사람은 살아 있는 상태의 관성, 습관을 쉽게 깰 순 없나 보다. 지나고 보면 여전히 비루한 삶이지만 저 험난한 과정을 버텨낸 힘이 이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절좌우무에 워낙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 그런진 모르겠지만, 내가 절좌우무 속에 사는 이 삶이 비루하다고 느끼듯이 분노의 칼만 가는 그 삶도, 내가 느끼는 비루함만큼의 부정적인 요소가 있지 싶다. '나는 절좌우무속에서 산다'와 '나는 분노의 칼을 갈면서 그 원수를 꺽기 위해 활력있게 산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지한 두 당사자가 만나서 대화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어이구, 절좌우무속에 빠져 그렇게 비루하게, 무기력하게 사는 삶이 삶이냐? 나같으면 죽어 버리겠다. 봐라, 나는 얼마나 활기차냐?"면서 나를 비웃겠지만 말이다.
젊었을 때에 만약 저런 대화를 했었었다면, 저 사람은 그래도 저렇게 활기찬데, 나는 무력한 내 자신이 더욱 더 초라하게 느껴져 분노가 치솟아 그냥 자살해 버렸을 것 같다. 사실,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가 초절정에 이르는 젊은 시절에, 우울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저렇게 제대로 인지하고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처지와 180도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저런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긴하지만...
많은 껍데기를 깼기에, 나름 원숙해졌다고 느끼는 지금도 내게는 불가능했었던 쪽의 세계를 보자면, '나는 저게 불가능했었지'라는 박탈감에 아직도 분노, 울분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데 젊었을 때에 저런 대화를 한다는 건 정말 어불성설이다. 젊었을 때에 저런 대화를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모든 가식과 허위의식을 던져버린 자살직전의 상태의 사람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리라.(생전 처음으로 모든 가식, 허의의식을 던져버린, 삶의 최대의 진실성 대화를 나눈 뒤에 자살...)
하지만 분노가 상당히 엹어진 채로 늙어가면서 지금 드는 생각은 이렇다. 지금 저런 대화를 한다면 "내 삶이 당신 살보다 더 좋은 삶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없고, 할 힘도 없고, 그렇게 얘기하고픈 맘도 없고, 설득할 방법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는 거. 사람은 다 지 잘난 맛으로 사는 건데 내가 잘난 게 뭐가 있다고 당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해 내가 감히 이러쿵 저렁쿵할 수 있겠냐?는 거다.
이래서 내 과거를 곰곰히 돌이켜 보면 나에게 욕, 비판해준 사람들이 참으로 고마운 존재라는 게 느껴진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고---무관심한 대상이면 그냥 "좋네요." "예, 예" 이렇게 긍정하는 답만 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을 최대로 망치게 하는 게 항상 칭찬만 하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최소한의 걱정하는 맘이 있으니 이런 욕, 비판을 하는 것이니까. 물론, 욕, 비판하는 사람 중에 괜히 상대방에게 자기가 우쭐대고 싶어서 그러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 동기가 좀 불순하다고 해서 그 비판내용까지 무가치한 건 아니라고 해야 할 게다.
장애인의 삶을 기준으로 삼기?
이 병때문에 '나는 희망이란 걸 기대해선 안되는구나'라는 내 삶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나마 낌새를 챌 수 있었기에 이런 내 나름대로의 생존유지법(?)을 체득할 수 있었던 거지, 자기가 병신, 장애인인것도 모른채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면 지금쯤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물론, 삶의 질 측면에서 비루하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더 낫다는 관점으로 보자면 현재의 내 삶은 자살한 사람의 삶보다 가치가 없는 거긴 하다)
그런데, 장애인의 삶을 기준으로 '나는 저것보다는 양호하군~'이라는 걸로 위안을 삼는 삶이란 게 비루하고 서글픈 삶이지, 남에게 내세울만한 삶이 못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해야 겠다. 하지만 내가 평생을 절좌우무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아왔지만 이 세월들이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 간 게 아니라 내가 내 나름대로의 생존유지법을 체득해 가는 과정이었고, 내가 선택한 이 전략(?)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비로소 들기 시작했다는 건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있다가 사라지면 안 좋은 거지만, 없다가 생기는 건 이렇게나 좋은 거다. 그래서 고생, 상실은 돈주고 사서라도 해 봐야 하는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