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존엄사 센터가 있으면 좋겠다. 입력:2008-08-19 사실상,
삶을 체념한채 절좌우무(절망, 좌절,
우울, 무기력)랑 벗하고 살다보니(참으로 부정적인
것들과 친구하면서 살죠...) 드는 생각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 생각
중의 하나가 내 몸의 장기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는 겁니다. 절좌우무가
몸과 내장에 미치는 스트레스가 엄청날텐데, 장기들도 이런 병신장애인의 몸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것보단 정상인의 몸에서 주인의 삶의 의지에 맞춰
적극적으로 팔팔 뛰는 게, 비록 겉으로는 힘들지 몰라도 장기들도 더
가치있게 느끼지 않을까라는 거죠. 교사와 학생으로 비유하자면 공부머리는 되지만 부모의 능력 등의 가정환경, 자신의 신체적 결격사유, 권력자의 횡포 등등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외부 여건으로 인해 원하는 상급학교로의 진학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환경에서 "공부하면 뭐해~"라면서 완전히 자포자기, 체념상태에 빠진 무기력한 학생보다는 공부에 대한 열의가 워낙 강해 수업 중에 비록 엉뚱한 질문으로 교사를 당혹스럽게 할지라도 공부에 대한 강한 열의를 가진 학생을 가르치는 게 교사 입장에선 오히려 가르칠 의욕이 나는 것과 비슷한 거죠. 물론, 선생자질이 부족한 단순 월급쟁이 교사라면 자신의 노동강도만 높여주는 후자의 학생이 눈에 가시같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정말 할
일이 없는 인생이다 보니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어느 순간, 장기에게도
개별적인 의식이 주어져 지금 거주하는 몸에서 다른 몸으로 이주할 권리,
능력이 주어지면 그동안 묵묵하게 참아 왔었던 장기들이 폭동(하극상?)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요. 만일 그런 날이 오면 스트레스에 짓눌려 생활하던 장기들이 "야, 이 시발놈아~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야이, 개새끼야, 그동안 니가 생산해 내는 스트레스, 우리가 감당해낸다고 정말 좆같았는데, 드디어 이런 날이 왔구나~ 이런 날이 왔는데 우리가 미쳤다고 니 몸에 계속 있겠냐! 니같은 병신몸에 있는 거 지긋지긋하니 이제 내 맘에 드는 정상인의 몸으로 옮겨 갈거야!!! 이런 기회가 왔는데도 안하면 우리도 너처럼 병신이라는 거잖아~"라는 류의 절규를 내 뱉으면서 다른 몸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옮겨 가지 않을까라는 거죠.(사회와 차단돼 있는 자신의 은둔형외톨이의 삶을 장기에게 투사하고 있는 듯ㅋㅋㅋ) 아마, 이런 날이 오면 더 좋은 자리로 가려는 장기들과 현재의 자리를 수성하려는 장기들간의 피터지는 자리쟁탈전(동족상잔?)이 펼쳐질 것이고 그럼 저 같은 병신장애인들은 그날로 세상 하직이거나, 정상인의 몸에 있던 장기들이 자신들의 거처를 제대로 수성을 못해 눈물을 머금고 일시 후퇴해 임시변통으로 제 몸으로 옮겨 와서 예전보다 열등한 조건의 몸에서 자기들도 우울한 상태로 작동을 하게 되겠지요. 아니면, 저보다 더 병신스러운 몸에 있던 장기들이 일보 전진해 제 몸에 옮겨 와서 기쁜 맘으로 움직이게 되어 예전보다 더 활력있는 상태로 작동을 할 수도 있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이런 세상이란, 말그대로 초절정의 생존경쟁에 적자생존이 적용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인지를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하는 삶의 환경은 실제로 이런 식으로 결정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쨋든 이 병이 선사하는 이 엄청난 절망에 정상적인 삶을 체념한(지금은 이 절망을 절망 그 자체로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 들이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저같은 병신장애인들은 장기들에게 생각할 능력이 없어, 자신의 욕구, 의지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하게끔 자연법칙이 되어 있다는 걸 정말로 감사해야 할겁니다. 이렇게, 자세히 보면 세상에는 감사해 할 것이 수두룩 하네요. 이렇게 별 희한한 개념으로 이런 긍정적인 요소를 꺼집어 내는 걸 보면 아직 제가 그렇게 심하게 망가지지 않았단 말일테고---역설적으로 말하면, 자살하는 게 너무나 두려워 강제적으로 이렇게 긍정을 찾아내 이 세상에 정을 계속 붙이려는 발악을 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요---세상은 살만하다는 걸 느끼고 있단 말이겠지요. 성철스님의 법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의 의미를 장기만큼 잘 아는 개체들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법문을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찍소리 말고 너에게 주어진 혹은 선택한 본분을 다하라" 이 말이라고 느끼고 있는데 제가 병신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이었으면 이런 개념을 알아채지 못하고 분수에 안 맞는 욕심을 추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지금은 그 상태가 아니란 말인가?"라는 반문도 나오긴 나오네요. 절망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병신장애인이니 이런 점을 알 수 있다는 살포시한 장점이 있네요. '나=병신장애인'이라는 다른 사람이 쉽게 하기 힘든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 혹은 정체성을 인지하는 게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죠.---물론, 저건 범위를 자기 개인에게만 한정시켰을 때 적용되는 얘기고 가족으로 넓히면... 아, 끔찍하네요ㅋㅋㅋ생각하기도 싫다---희망이 항상 좋은 것일 수만은 없으니까요. 절망이 필요한 곳엔 절망이 있어야지 그 곳에 억지로 희망을 주입하면 오히려 사고가 터지지 않나 싶습니다. 어쨋든 '나=병신장애인'이라는 걸 갓 인지했을 경우, 당연히 절좌우무도 수반되기 마련인데, 이렇게 절좌우무에 고착돼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은 절좌우무를 나 스스로 종결시킨다는 의미로 자살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 맘에 안 드는 외부의 조건에 의해 삶이 이렇게 황폐하게 휘둘러 지는 것보단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덜 비루하고 삶의 질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는 말이죠. 그리고 자살은 이 맘에 안드는 삶에게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을 하는 의미도 될 터이고... 아, 다시 생각해보니 최대의 저항은 이 맘에 안드는 삶이란 놈에게 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일테고, 자살하는 건 차선의 저항 쯤 되겠네요.("나는 절망이랑 살고 있지만 자살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요? 그럼, 그건 절망이 아니거나, 님이 정말로 엄청난 사람이라는 의미겠지요.) 이렇게
자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드는 생각 중의 하나가 '자살=엄청난
자원낭비'라는 겁니다. 그냥 이렇게 자살하면 각막, 심장, 신장 같은
제 몸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재활용가능한 개체들도 그냥 쓰레기가 되고
마니까요.
정상인의 몸에 부착되었으면 얘네들 수명이 이렇게 중간에 종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고, 자기가 병신, 장애인이면서도 자기 환경에 맞게 눈을 낮출 줄 모르고 자기 삶의 조건보다 높은 정상인의 기대치를 계속 갖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의 몸속에 있다 보니 얘네들의 수명이 이렇게 빨리 종결되는 것일진데, 이게 어떻게 보면 도덕적으로 죄악이란 거죠. 모르겠습니다. 장기들도 "아휴, 우리도 장기로 살고 싶어 장기로 살아 온 게 아닌데, 빨리 죽어줘서 오히려 우리가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생각할런지는... 저는 만일 윤회란 게 있다면 완전한 하나의 개체로 생을 떠도는 게 아니라 생물의 장기 등등으로 떠돌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까딱하면 몸의 세포, 혹은 세포를 구성하는 분자, 원자, 전자의 수 만큼의 생이 우리의 몸을 떠받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자신의 몸에는 내 하나만의 생명이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윤회의 탈 것(vehicle)이 들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삶이 고통스럽고 괴롭더라도 오래 살아 주는 게 얘네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빨리 종결시켜서, 길든 짧든 너희에게 어쨋든 1번의 삶의 기회를 줬다는 것으로 충분한지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거죠. 가령, 장기들이 장기로서의 삶을 10번 의무적으로 거쳐야만 인간의 의식으로 태어나는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고, 정상적인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도중에 죽게 되면 1회로서 인정이 안되는 거라면 비루한 삶일지언정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래 살아줘야 장기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정상적인 수명을 누리다가 죽든 도중에 죽든 장기로서 존재했었다는 그 자체가 1회로 인정되는 거면 우리가 빨리 죽어 장기들이 장기로서의 10회의 삶의 의무를 빨리 채워가게 하는 게 장기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일겁니다.(얼마나 할 일없는 인간이면 이런 생각을 다 할까요?ㅋㅋㅋ) 어쨋든 절좌우무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장기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저는 제 장기들을 살살 달랜답니다. "너희들도 내 몸에 있고 싶어 나같은 병신장애인 몸에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도 병신장애인 되고 싶어 병신장애인 된 거 아니다. 피장파장 아니냐? 그리고 내 감히 장담하는데, 지금 내 의식이 너희들 장기 중의 하나가 되고, 너희 중 하나가 내 의식이 된다고 하더라도 너희 중에서 이 삶의 조건에서 절대 나만큼 이렇게 덜 망가지고 견뎌 왔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거다. 이렇게 내가 이 절좌우무랑 씨름하면서 얼마나 이를 악물고 견뎌왔냐?하는 건 너희들도 알잖아? 그나마 내가 의식을 맡아 왔었기에 이렇게 덜 망가지고 최소한 이 정도는 건사할 수 있었던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얘기하면 저만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장기들도 웬만큼 성격이 비비 꼬여, 자기 탓은 할 줄 모르고 매사를 누구 탓,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탓 등등 모든 잘못을 남탓으로 돌려버리는 편리함에 너무 심취하지 않은한 저의 수고를 인정 안할래야 인정안 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뿌듯함같은 만족감이 자연스럽게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푸하하~ 이게 제가 자살하지 않은 현상태에서 느끼고 있는 저만의 뿌듯함이자 보람이기도 하고 절좌우무랑 사는 것의 장점아닌 장점인 것이죠. 그런데 이런 뿌듯함은 남에게 얘기할 수 있는 뿌듯함이 아니라는 게 좀 원통할 따름이죠.ㅋㅋㅋ 이런 기쁨도 분명히 기쁨에 속하는 게 맞을진데, 외부와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니다 보니 더욱 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왜 인간세상의 자랑거리는 재물, 외모, 학벌, 가족 이런 것 밖에 없단 말이더냐~) 가만 생각해보니 은둔형 외톨이의 특징 중의 하나가 외부와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이 없다가 아닌가 싶습니다. 슬픔과 아픔은 너무 강하니까 외부와의 공유를 안 할려는 것일 테고...
그러니 외부와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은둔형 외톨이의 기질은 더욱 더 강화되어 평생 가겠다 싶네요. 은둔형 외톨이는 자기 형편에 맞지 않는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터인데, 자기는 이렇게 무의미하게 은둔하고 있을 동안에 남은 뭘 하나를 더 해도 더 하고 있는 것이니 자신은 더욱 더 초라해져서 그 문을 더욱 더 굳게 잠글 수 밖에 없으니까요.(이건 저의 얘기이기도 합니다ㅋ 그람시가 말했다는 "이성으로는 힘들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라는 격언을 주문처럼 외울 수 밖에요ㅋㅋㅋ) 얘기를 원위치시켜, 저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남에게 신장 하나를 떼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이타심이 강한 호인은 절대 못 됩니다. 자기 분수를 정확하게 안다는 의미겠지요. 신장 한 개를 떼 줘도 몸에는 전혀 지장없다는 장기이식관련 의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만큼의 상병신도 아니고요.(비록 병신이지만 상병신은 아니라는 사실에 자그마한 기쁨이...) 하지만 죽는 마당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죠. 죽는 판국에 남에게 못 떼줄 거 뭐 있나? 제가 정상인도 아니고 장애인에 가까운 병신장애인의 상태로 살고 있기에 몸에 병이 있어, 즉 병신이란 삶의 조건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압니다. 특히나 경제적, 신체적, 의학적 요건 등 모든 여건은 충족되었는데 이식받을 장기, 이 조건 하나가 충족이 안돼 삶의 질이 극도로 저하된 채로 삶을 살아야 하는 장기이식 대기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공감할 수 있다는 거죠. 정도의 차이일뿐이지,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저 사람들과 저는 동병상련이기 때문이죠.(물론, 저 사람들이 장기이식을 한다고 정상인의 상태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현재의 병신상태보다는 한층 나아진 병신상태로 바뀌는 건 분명하겠지요) 이렇게
모든 여건이 충족돼 있지만 기증받을 장기, 이 한 조건이 부족해 비루한
삶을 살고, 어떤 사람(저)은 불치의 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체념한 삶을
살면서 "언제쯤 자살하게 될까? 그런데 자살하면 허무하게 버려질 장기가 너무
아깝다'"는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정말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 두 사람의 조건을 더하고 빼 적당히 이빨을 맞춰주면
양쪽이 윈-윈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죠. 물론, 제가 지금 당장에
자살하겠단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안락사, 존엄사 센터라는 게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싶더군요. 장기들은 심장이 멎는 즉시 손상이 가기에 심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장기를 떼어내는 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쉬운 말로 하자면 옆에 의료진이 대기한 상태에서 죽어야만 버리는 거 없이 알뜰한 장기이식이 가능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된다는 말이죠.(한 사람이 이렇게 죽으면 7명 분의 장기가 나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만일, 이런 안락사, 존엄사 센터가 있으면 저 같은 자살희망자의 연락을 받아 안락한 환경에서 죽게 하고 죽기 전에 장기를 적출해 장기이식 대기자들에게 이식하면 님도 보고 뽕도 따는 누가 피해 보는 쪽이 없이 양쪽이 윈-윈하게 된다는 거죠. 제가 알기로, 자신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극한 기쁨을 느낀 나머지 극한의 행복감을 가진 상태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없진 않다지만 대부분의 자살자는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외딴 곳에서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없이 죽어 갈수 밖에 없을겁니다. 하지만 "안락사, 존엄사 센터가 있으면 무가치하게 자살하지 않고 타인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면서 자살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냐?"이 말인 거죠.(이렇게 이타심이 강한 사람이 또 없을텐데, 삶은 왜 이리 비루한지???ㅋㅋㅋ)
저야 뭐, 자살49%, 삶을 51%로 생각해 온 사람이라 외딴 곳에서 혼자 자살하는 게 그렇게 두렵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자살을 결행할 시점에서도 이런 생각이 과연 유지될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그리 큰 변화는 없으리라 봅니다. "대체, 내가 자살, 죽음으로 궁리한 세월이 얼마인데 다른 자살자와 같을 수야 있나?"라는 좀 변태스러운 우쭐한 생각에 웃음이 피식~하고 나오네요.ㅋㅋㅋ 이런 차원의 우쭐거림을 느끼는 인간이 세상에 또 있을까?싶습니다. 얼마나 비루한 삶이면 이럴까요?ㅋㅋㅋ 저처럼 일시적 감정이 아닌 병에 의해 공허한 감정이 평생을 관통해---처음에는 제 맘에 들어차 있는 이 부정적 기운이 뭔지 몰랐었는데, 겪다 보니 그게 분노라는 걸 느끼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니 이 분노가 줄어들면서 공허함으로 바뀌는 것 같더군요. 확실히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프로그램은 정말 기똥차게 잘 설계 돼 있다는 생각입니다. 공허함이 먼저 오고 분노가 뒤에 온다면 삶을 버텨내기가 정말 버거울 텐데 말입니다 --- 절망, 좌절, 우울, 무기력에 포위된 사람의 경우, 자살의 감정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니 이제 죽어야 겠다는 결심이 들어섰을 때 이런 안락사, 존엄사 센터가 있으면 장기이식을 못 받아 줄을 서 있는 환자들에게 제 한 몸을 불살라 혜택을 선사할 수 있다는 말이죠.(엄격하게 말하자면 존엄사 센터겠죠. 더 이상 초라해지기 싫어 죽는 거니까요) 제가 대단히 위선적인 사람이라 혼자 자살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 남을 위하는 척하는 이런 존엄사 센터 개념같은 겉으로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만들어 그 뒤에 자신의 사적 욕구, 즉 외딴 곳에 가서 칙칙한 마음상태로 자살하고 싶지 않은 욕구를 숨기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으니까요. 자기 사욕이 행동의 발단이면서 대의 명분을 겉에 내세워 자기 사욕을 감추고 타인을 속이는 사람들요. 아니면 실제론 사욕인데, 자기가 공익을 위하는 건줄로 진정으로 믿고 있을 정도의 최고 수준의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들도 있고요. 저는 그렇지는 않지 싶네요. 물론, 이런 안락사, 존엄사 센터가 정말로 현실화되면 장애인, 환자, 노인같은 돈은 안되면서 사회적 비용만 축내는 계층에 대해 "너같은 인간이 살아서 뭐하냐? 얼른 자살해서 사회에 도움이 돼라~"라는 엄청난 사회적 압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부정못하겠네요. 이건 뭐, 정책 당국자들이 조율해야할 문제겠지요. 하지만, 저는 안락사, 존엄사 센터가 가지는 긍정적 의미가 부정적 요소를 충분히 상쇄하지 않을까 싶네요. 범죄자 100명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억울한 범죄자를 만들지 마라는 법률속담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 환자, 노인들이 좀 핍박받더라도(저 사람들이 핍박만 받는 게 아니라, 자살자가 주고 가는 장기로 혜택보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비록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긴 하지만 병으로 핍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이런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그 높고 숭고한 뜻을 존중해 주는 게 보다 더 가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족 저같이 병에 굴복해 자살하는 사람이라면 병신 삶의 괴로움, 서러움, 초라함, 고통, 울분 등등을 알기에 과부맘은 과부가 안다고, 안락사, 존엄사 센터가 생기면 장기이식으로 나름대로 호전가능한 병신, 장애인들을 위해 장기기증을 통해 저들의 상태를 어느 정도 구제해 주고서 자살할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장기는 항상 부족한 상태인데(호주에서는 장기매매 제도를 도입해 과도한 대기현상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더군요)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사실, 이 마음은 제가 오로지 고통받고 있는 병신, 장애인들의 삶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살로 인해 비자연적으로 수명이 단축되는 장기들에게 느끼는 미안함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겁니다.(자신의 내면을 드러다 볼 기회가 적었었던 보통 사람같았으면 "나는 오로지 병신, 장애인들을 위한 맘에서 이러는 거다. 나는 정말로 착한 사람이야~" 이러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생각도 들긴 듭니다. 그래도 장기들이 부작용이 엄청난 면역억제제가 흐르는 타인의 몸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비록 절망, 좌절, 우울, 무기력이라는 악조건이긴 하지만 인간의 자연적인 조건 속에서 사는 걸 더 선호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요. 아마 후자의 환경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초창기의 유서이고, 자살에 대해 오래 고뇌하다 보니 새삼 무슨 미련이 남아 유서를 남기나? 죽을 때에는 이 비루함에서 한 번 초연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생각이 전이, 아니 발전(?)되었는지 이제 유서를 남기지 않고 죽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아니, 99.999%는 유서를 안 남기고 죽을 수 있게 됐다고 해야겠네요.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지금 느껴지는 초연함은 정말 좋은 것임은 부정못하겠군요. 절망 밖에 없었던 삶에서 이런 초연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격이네요. 절망과 함께 사는 삶이니까 이런 장점이 느껴지는구나 싶어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마도 뭘 하겠다라는 희망을 주축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정상인들은 지금 저의 이 기분을 절대 느끼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정상인이 사고로 휠체어 장애인이 된 직후에 느끼게 되는 그 초절정의 절망뿐이던 그 마음이, 시간이 꽤 흘러 자신의 장애를 받아 들이고, 휠체어를 자신의 동반자로 인정하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심리 상태가 지금 이런 나름의 초연함을 느끼고 있는 저의 심리 상태와 비슷한 게 아닐까?라는 짐작만... 어설픈 행복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자살얘기로 돌아갑니다.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도 만들어 지네요. "어차피 사람은 한 번은 죽는 건데, 난 좀 더 일찍 죽는 것 뿐이다라고 생각하자." 좀 더 급진적으로 생각한다면, "다들 삶에 대해 종속되어 마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인데, 나는 적극적으로 죽어 이 비루한 삶에 대한 종속성을 강력하게 탈피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기쁜 맘으로 자살하게 될 확률도 엄청 높은 상태다. 이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자살에 대해 예전보다 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거는 무지 다행이라는 생각이네요.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지나 보면 알겠지요. 어쨋든, 지금 느낄 수 있는 초연함, 그 엄청난 절망의 과정을 잘 버텨 왔다는 나름대로의 뿌듯함은 정말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상승, 확장으로만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는 정상인들은 정체된 상태에서 , 혹은 추락하는 상태에서 자기 성찰을 할 계기가 별로 없었을테니---희망과 목표가 보인다면 굳이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기성찰을 할 필요가 그리 많진 않을 겁니다. 저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비루한 방식으로 자기성찰을 해야 했었던 건 아니니까요---제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좀 느끼긴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병신장애인, 절망으로 산다는 것에 이런 나름의 희망이 있다는 게 참으로 황당하기 까지 하네요. 어쨋든 감사한 일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