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인간의 경계가 명백히 구분지어져 있어 고맙다 ①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하여튼, 저 속담을 내 관점에서 보면, "니 자신을 알라", "주제파악하고 살아라" 이 말이다. 나는 저 속담에는 저쪽 계의 개체가 이쪽 계를 침범할 수 없기에 외계와의 '다툼'없이 자기 계에서 옹기종기 지극히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런 기운같은 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나는 분노할 힘까지 소멸해 버린 최고수준의 무기력, 혹은 안정 상태에 이르렀기에 저 속담에서 저런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거리라. 그리고 장애, 중병 등등이 주는 절망, 좌절, 우울, 무기력등에 사실상 평생 노출되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일테고. 중병, 장애는 원래 사람과는 상대가 안되는 싸움인데, 이 안 좋은 게 자기에게 주어져 있으니 처음에는 "이 안 좋은 것에게 지지 않겠다"고 당연히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멋 모르고 계속 싸우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입는 손해도 막대하기에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가장 손해가 덜한 방법인 공존을 선택하게 되지 싶다. 암환자가 전투적으로 암 퇴치를 목표로 하는 것보단 암을 인정하고 그 암과 친구처럼 공존하겠다는 너그러운(?) 개념을 가질 때 오히려 생존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내게는 안 주어져 있는 걸 얻어 낼 힘이 있다고 믿는, 즉 노력하면 나아질거야라는 강한 희망이 있는 사람은 저 속담에서 나와는 다른 걸 느낄 게다. 즉, 체념이든 자기위안이든 그 이유가 뭐든간에 나는 만족의 개념으로 접근했기에---놀랍게도, 체념, 포기도 만족의 한 영역인 것 같다---저 속담을 좋게 해석하면서 저런 개념으로 받아들인거다. 하지만 부족의 개념으로 접근한 사람은 "나도 뭔가를 성취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요라는 그 충만감을 느껴보고 싶다"면서, 나와는 달리 투쟁의 열의를 강력하게 내뿜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말이다. 당연히, 내가 봐도 내같은 삶의 자세보단 저런 열의를 내는 게 정상적인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삶이니 후자가 보다 옳은 삶의 자세인거는 분명한거다. 내가 앓고 있는 이 병은 치료가 불가능해 나는 사실상 체념 혹은 포기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으니,---체념과 포기가 별반 다르지 않은 거 같은데, 실생활에서 이 둘의 차이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궁금해진다. 하여튼, 할 일이 없으니 머리를 이런 쪽으로라도 써야만 뇌의 퇴화를 막게 되지 싶다. 이런 글쓰기 자체도 뇌의 퇴화를 막기 위한 한 방편이고...---이렇게 가장 쉬운 형태 혹은 가장 무기력한 형태의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의 개념으로 저 격언을 파악하는 것이리라. 즉, 내가 저 속담에서 느끼는 건 "병신은 병신대로, 장애인은 장애인대로, 못 사는 자는 못 사는대로 주제파악하면서 살아라" 이 말인거다. 타인, 특히나 기득권 자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이런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면 정말 화딱질나고 분노가 솓구쳐 당연히 저항이라도 해야 할 일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 번쯤은 음미해 볼만한 가치관이 아닌가 싶다. 속담에 관한 얘기는 그만 접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런 가정을 한 번 해 본다. 내 병이 치료가 되고 그 비용은 1억원이 든다는 가정을...(할 일도 없는데 이런 공상이나 하면서 노는 거다~) 저렇게 되면 지금 내 삶에 희망이 생길까? 절망이 더 생길까나? 현실적으로 내가 1억원을 번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저 얘기를 그냥 흘러 버리고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 같다. 1억원이란 돈을 벌 능력도 안될 뿐더러 1억을 벌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고생, 걸리는 시간, 이 병이 나아 정상인이 되었을 때 내가 얻게 될 이득을 따져 보면 채산성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정년퇴임한 가장에게 암이 발생했는데, 치료비가 1억이란 얘기를 병원에서 듣고, 치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해야 할게다. 자기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하면 당연히 치료를 해야겠지만 1억원이 가족에게 선사할 수 있는 혜택을 생각하면 수술결정을 쉽사리 내리기는 힘들 거기 때문이다.(차라리, 1억원이란 비용을 들이고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쉽게 단념할 수 있어 '낫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리라) 물론, 긍정적 사고와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면 이건 내가 번 돈이고, 나는 가족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나는 그 만큼의 가치있는 사람이라면서 웬만하면 수술을 하려 하지 않을까 싶다.
희망의 관점에서 보자면, 돈만 있으면 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공무원이 되기만 하면 내 인생이 풀린다는 거니 나도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즉, "병신장애인인데 하면 뭐해, 공무원 돼 봤자 뭐해~"라는 내 인생 최대의 억압이 깨지고, 다른 사람들처럼 "합격하면 모든 게 변할 수 있다"는 상쾌한 맘으로---이런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에 취업준비자들이 다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관점에선, 개나 소나 다 세워보는 이런 궁극의 목표를 한 번도 못 세워 본 나는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리라...---공무원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의미다. 물론, 공무원 공부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병신장애인이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물론, 공인장애인이었으면 당연히 공무원 공부를 했었을테고---근원적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런 가혹한 악조건이 부가되지 않았었던 다른 수험생보다는 배부른 소리를 덜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게되는거다. 억압이 깨진 환경이 되었으니,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 공무원이 되면 대출을 받아 이 병을 낫게 하면 '정상인'과 '직장인', '떳떳한 자식' 등등 그 동안 나랑 인연이 없었던 이런 조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서 나도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이 된다는 말인데, 이거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얼마나 간절히 바라면, 저렇게 된다는 사실에는 시비걸고 싶은 맘이 전혀 안 생기네.ㅋㅋㅋ) 그런데 1억이면 최소 6년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지금의 늙은 정신상태로 저걸 생각해보니 좀 끔찍하기도 하다. 새빠지게 저 세월동안 1억을 벌어 빚을 갚는 것보단 그냥 이렇게 비루하지만 고독을 친구삼아 장래 걱정하고 사색이나 하면서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ㅋㅋㅋ 배가 정말로 처불렀거나~ 정신까지도 완전히 병신장애인이 됐거나~ 둘 중의 하나리라~ 정상인이
되어도 이 겸허한 생각이 유지될까나? 내가 새빠지게 공부해 공무원이 됐고, 대출을 받아 병을 고쳤다. 드디어 정상인이라는 나의 가장 기본적이자 궁극적이었던 소망을 이뤘다. 그런데 앞으로 6년 동안은 정상인이 된 기쁨은 크게는 못 누리고 월급을 빚갚는데에 다 들여야 한다. 물론 병신장애인인 지금의 생각으론 정상인이 됐다는 저 기쁨이 6년 동안의 그것을 상쇄시켜 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정상인이 되고 나서는 내 뇌리에는 병신장애인의 의식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상인의 의식도 태동하게 된다는 거다. 이 의식이 서서히, 혹은 급격히 어느 정도로 태동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질 것이니 행복감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내가 평생을 원해 왔었던 정상적인 생활을 위한 기본조건인 정상인 몸, 즉 병신장애인의 이상향이 이뤄진 것이니 드디어 빛을 본 이 정상인 의식이 폭주를 안한다고 보장을 못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6년 동안 빚만 갚아야 하는 저 현실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을까나?(고로, 가장 안전한 방법은 대출 안 받고, 1억원이 다 모을 때까지 월급을 저축하고 나서 치료를 하는거다.) 이래서 평생의 소원인 "정상인이 돼 보자~"라는 염원 하나로, 정말로 새빠지게 공부해서 저 꿈을 이뤄 냈는데, 실제로 되고 보니 의외로 기대치에 너무나 못 미치는 실망스런 경험이 될 수도 있는거다. 실현된 정상인 몸보다 앞으로 갚아야 할 1억원의 돈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로또에 걸리면 평생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 행복감은 1년도 채 못 간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이건 당첨금을 흥청망청 써서 복권 당첨이전보다 삶이 더 열악해진 병신같은 당첨자들의 예를 든게 아니라 일반적인 당첨자의 예를 든 것인데 당첨자의 1년 정도가 지나면 뇌가 당첨금에 적응을 해서 그 당첨금이 주는 기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말이다. 목감기에 걸려 심하게 콜록~콜록~거릴 때 "이 콜록~콜록~이 사라진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감기가 나으면 "콜록~콜록~안 해서 감사하다"는 맘이 며칠도 겨우 못 가는 것과 비슷한거다. "로또당첨과 감기나은 거랑 같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크게 보면 같다고 할 수도 있는거다.(이런 사소한 것에 대한 이런 감사한 기분을 인위적으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의 열쇠를 찾은 사람이 아닐까?싶다) 나는 병신장애인이라는, 이 가혹한 병신스런 조건에 살아 남기 위해 열정을 다해(?) 자기 인생에 별다른 기대를 안하는 방법을 취득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살다보니 여기서 나름의 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게다.
거기다가 나이까지 어느 정도 된 사람일 경우, 자기가 막대한 대가를 치뤄가면서 정상인이 된다는 건 오히려 자신을 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정상인이 되기를 두려워 하는 마음인가?ㅋㅋㅋ 아, 이런 병신같은 얘기가 있을 수가 있구나.) 내성적인 성격때문에 자기 인생이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성격개조를 해 외향적인 성격이 됐는데, 나중에는 예전의 그 내성적 성격이 내게는 맞는 것이었다는 걸 깨닫고선 자살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저건 어떤 심리관련 책에서 읽은 건데, "거참, 예전의 내성적 성격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나?"싶은데 역시나 사람의 의식이란 게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물론 희귀한 경우랑 비교를 했지만 저걸봐도 내 말이 전적으로 개소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거다. 그래도, 나의 경우 치료비용이 1억원이 아니고 2000만원 정도면 한 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치뤄야 할 대가가 그 사람에게 적절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음냐, "고립되어 사는 병신장애인 새끼가 자신의 처지를 자위하기 위해 더욱 더 강력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쯧쯧, "얼마나 나약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라면 이러고 있을까?"싶은데... "병신장애인이 괜히 병신장애인인가? 이러니 병신장애인이지~"로 밀어붙이는 수 밖에 없도다.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