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단 나은 삶을 살고 있으려나? ⑧
희망이
없는 놈은 고생을 견뎌낼 능력이 없다. 희망이 있는 놈은 다같이 하는 고생이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강한 규율, 육체적 의무를 견뎌내겠지만 희망이 없는 놈은 그걸 견뎌낼 의지가 나올리 없으니---희망이 없기에 "이 고생을 어떻게 견뎌? 견디면 뭐해"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모든 게 짜증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병신장애인인데 하면 뭐해?"라는 지금의 내 의식 상태와 딱 똑같은 의식 상태인거다. 힘들고, 짜증나는데 행동이 똑 바로 나오겠나? 더군다나 행동 똑바로 못한다고 고참들은 갈구게 되는데? 힘듬, 희망없음, 짜증, 고참의 갈굼 등으로부터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받으면 위축과 폭발의 경계에서 극도로 대립하고 있을 뇌가 "내가 잘못해서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행동 똑바로 해야 겠다"이런 생각을 할까? 절대 그럴리 없다. 희망은 없지, 버텨낼 이유도 없으니 100이면 99로, 사람이 극한의 퇴행을 하게 돼 자기의 귀책사유는 전혀 생각 못하고 "내게 이 고난을 초래시킨 이 나쁜 새끼들" 이러면서 총구가 자신의 고참에게도 향할 수 밖에 없다.(나도 군대갔었으면 저렇게 됐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고참 중에 나이가 좀 있어 이런 걸 살필 줄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저런 사고가 터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난 신검때 내게 면제판단을 내려준 그 군의관께 대단히 감사한 맘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내 목숨을 살려 줬고 나와 같은 소대에 있었을 소대원들의 목숨도 살려준거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병신장애인이고,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내 심성이 이렇게 비뚤어지지 않은 것은 저 군의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 무의식적인 감사함이 큰 역할을 하는거지 싶다.(물론, 이걸 의식적으로 느꼈었던 건 아니고, 무의식적인 은은한 차원에서 느끼고 있었던 거지 싶다.) 규정에 따른 것인지, 군의관의 재량에 의한 것인진 알 수 없지만 내가 신의 아들이 된 거에는 저 군의관의 재량도 좀 있지 않았나 싶다. 내 기억에, 나를 담당했었던 군의관이 옆에 있는 군의관에게 "O선생, 나중에 얘기 좀 해주세요"라고 한 걸 보면 말이다. 내 느낌으로는, 저 말은 "이 사람에게 왜 면제판정을 내렸냐?"고 상급자가 물을 때 그에 대한 얘기를 해 달라는 의미같았다. 아마도, 병무청에선, 면제받는 사람들의 자료만 따로 추려 이게 금품수수에 의한 건지 아닌지를 검사하는 절차가 있지 싶다.(머리가 상당히 크진 지금 생각해 보면, 저건 병역부정 예방이 아니라 "나만 빼놓고 너희들만 돈먹게 할 순 없다"는 군의관을 통솔하는 병무청 고위직의 의도인지도.) 이래서 내게는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가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하는 배려가 그 타인에게는 막대한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지 싶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나는 "나를 생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내 목숨을 구제받는 배려를 받은 것일 수도 있으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경험했었던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저 생각은 평소에 느껴 왔었던 게 아니라 이 글을 쓰면서 갑작스레 떠 오른 생각인데, 하여튼 글쓰기의 치유효과란 게 의외로 강력한 것 같다. 자기가 선택한 것을 하는 것에 대한 몰입이 주는 위력인가 싶기도 하다. 이런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건설적인 노동임에는 분명하니까. 젊었을 적에 자살을 했었으면 '글쓰기가 주는 치유효과', '나는 타인의 배려로 목숨을 구제받은 걸수도 있다는 뒤늦은 감사함'같은 기쁨을 못 느끼고 죽었을 것 아닌가? 하여튼, 여전히 비루한 삶이지만 그동안 못 느꼈었던 이런 기쁨이 늘그막에라도 줄줄이 발굴되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맨 마지막에 "문닫지 마세요, 나는 희망이에요"라는 내용이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신화를 나처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잘 없을 것 같다. 만일 내가 징집제인 한국에서 안 태어나고 모병제인 일본에 태어났었다면 국가로부터 이 병에 대한 공식적(?) 평가를 가질 기회를 가지질 못한 채 방구석에 앉아 '내가 용기가 없어서 인가? 의지박약인가?'라고 고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신체복도 없는데 부모복까지 없는 사람이라면 저런 소리를 내면의 갈등에만 그치지 않고 외부로부터도 들어야 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괴로울 거다.(아~ 징집제 국가에 태어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잘 없을 것 같은데... 하여튼, 병신 장애인 인생의 오묘한 묘미라고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도다~ㅋㅋㅋ) 암보다
무서울 수 있는 병? 어느 대학교수가 자신이 지은 책에서 이 병은 암보다도 더 무서울 수 있다고 표현했던데, 그 글을 읽으니 이 병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저 대학교수가 참 고맙고---이런 고마움은 결핍된 환경에서 거부를 많이 느끼면서 살아온 사람 만이 느낄 수 있는 거라고 해야 할텐데, 이 병때문에 매사에 이런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건 대단히 감사하다---"이 사람은 자기가 속한 세계 이외의 것을 좀 볼 줄 아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만. 아니면 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어쨋든, 나는 "내 병을 노출시키고 병신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바에야 죽는 게 낫다"라는 생각이 워낙 확고하니 이렇게 사실상의 은둔형 외톨이로 존재할 수 밖에 없도다. 나는 이런 확신범같은 사상을 갖고 있기에 "나는 주위에 뭔가를 바랄 자격도 없고 바래서도 안된다"는 금욕적인(?)을 태도로 살고 있으니 내 나름으로는 당당할 수 있는거리라. 그리고 이 병을 앓는 이들 대부분은 나처럼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산시체같은 비루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비루한 삶일지언정 그래도 "죽을 때에는 나를 주관하고 있는 이 의식으로 하여금 좋은 맘을 가진 채 죽을 수 있게 만들어야 겠다"는 정말 뚜렷한, 한편으로는 정말 회괴망측한 인생 목표라도 뒤늦게 만들어 져서 다행이긴 하다. 푸하하... 무저갱의 절망때문에 인생목표 설정이 불가능했었던 자가 무저갱의 초절정 단계를 거치면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생목표다. 남들보다는 수준과 품질이 정말로 떨어지는 목표긴 하지만 정말로 고귀한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리라... 음냐, 명심하자. "이성으로는 힘들지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라는 격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