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단 나은 삶을 살고 있으려나? ④

입력:2009-09-16

정상인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닌 병신장애인이란 어쩡정한 상태라고 해서, 밖으로 잘 나다니지도 않는 장애인을 찾아다니면서 어울릴 수도 없는 일이니 자연스레, 주위에 산적해(?) 있는 정상인들과 어울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어울리고 싶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기랑 비슷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사실, 자기에게 신체결함 등의 장애인 기질이 좀 있는 사람은 장애인과의 어울림을 더욱 더 싫어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기가 마음속에 억압시켜 놓은 어떤 부정적 감정이 건드려져 재생되니 그런 것 같다.(좀 가벼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장애인 취급당하는 거를 더 싫어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리라.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장애인 돕기는 정신이 정말 건강하거나, 정신이 정말로 병들었거나 이 양극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거지, 평범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장애인을 생각하면서 이 비루한 삶에서 위안을 얻듯이 후자의 사람은, 장애인 돕기를 하는 이들은 장애인을 도우면서 장애인들의 실상을 직접 보고 느껴야만 자신의 공허한 삶이 충족되는, 나보다 훨씬 더 정신이 병든 사람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상적인 몸이라는 내 관점에선 이상적인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생활하다 보니 내가 얻는 좋은 점도 있지만 형언하기 힘든 이질감, 위화감도 많았었다. 그리고 나는 안 되는 게 많은데 되는 척, 가능한 척 한다고 울화통이 터질 정도로 고통,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고...("병신장애인인게 발각되면 안된다"는 오기, 발악, 목표가 저런 고통, 스트레스를 건설적으로 처리해 줬지 싶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그래도 손해보다는 이익이 많으니 정상인들과 어울렸던 거라고 해야 겠다. 아니면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정상적인 삶이다"라는 병신장애인에게는 안 어울리는 잘못된 당위,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었거나...

이렇게 정상인들과 지내면서 겉으론 내색을 할 순 없었지만, 내겐 복에 겨워 하는 배부른 소리로 밖에 안 들리는 정상인들의 불만아닌 불만을 들으면서(물론, 병신장애인이라는 내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지, 정상인들의 상식으로 보면 그 불만은 충분히 근거있고 타당성이 있는거다. 가만생각해 보니, 행복뿐만 아니라 상식도 이렇게 상대적인 거구만...) 맞장구도 쳐주고 하다 보니 솔직한 내 속마음은 울화통도 좀 터지고 위축도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세상이 내게 온화하게 느껴지지 않다 보니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은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더욱 더 강화됐지 싶다. 그래서 지적인 차원에서 누가 옳고 그르고 뭐가 옳고 그르고 따지는 걸 대단히 좋아했었던 것 같고...

으악~ 최강의 자학, 비판의식과 싸우게 되다.
저런 비판의식은 내 자신이 열등하고 상대에게 다가갈 수도 없기에 내 의식이 상대방에게 함부로 다가가는 걸 막고, 상대방이 내게 가까이 오는 것도 막기 위한 저급한 차원의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이건 젊었을 적에는 절대 못 깨닫는다.---젊었을 적에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니체가 말한 '초인'일게다--- 나이듦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자각 역시도 자살 안 하기를 정말 잘 했다류의 기쁨을 들게하는 것 중의 하나다.)

나의 이런 비판의식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비판의식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그럴듯한 대의명제와 결합하면서 그 의식이 더욱 더 강화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은근슬쩍 "당신들은 어벙해서 그런 생각을 하고 나는 잘났기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근거라곤 전혀 없는 독선적 의식도 강화되었을테고... 젊었을 적에는 '나=병신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의식이 엄청 약할 수 밖에 없으니 병신장애인에겐 안 어울리는 저런 당돌한 생각이 가능했었던 거다.(젊음의 매력이자 단점인거다.)

그런데 갈수록 초라해져 가고 본격적인(?) 은둔형 외톨이가 돼 가면서, 이 과도한 비판의식이 나를 치는 칼로 돌아오는 정말 어이없는 현상이 발생하던데, 얼마나 충격이었고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뭔가를 바래선 안되는 인생이라 모든 욕구를 억제시키면서, 비루할 수 밖에 없는 내 삶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내 나름의 정신적 대비를 해 왔고 드디어 그 결실을 맺으려 하나 보다"라면서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려 하고 있었는데, "앞날을 내다보고(?) 미리 대비한 이 의식만큼은 내 형편에 안 맞게 키운 결과를 초래한거로구나!"라는 자각되는 그 이 상황은 정말! 정말! 정말! 충격! 후회! 그 자체였었다.

말그대로 가장 성능놓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 벌어지는 모순의 극치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던 거다.(저런 상황이 오리라는 걸 미리 알았다고 해도 방어책이 있을 수 없는 상횡...)

뭔가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한다는 것은 의식의 성숙한 행위일진데, 이렇게 모든 욕구를 억제하면서 내 나름으로 뭔가를 대비해왔다는 행위 자체가 의식 이 놈 하나만큼은 수준을 하늘 저 끝까지 찌를 정도의 수준으로 높혀 놓은 셈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러다 보니, 희망이 없어 아무리 세상사를 놓았다 할지라도 자살하지 않고 존재해 있었던 이상 결국에는 저렇게나 기고만장해진 의식의 무자비한 침공을 한 번은 받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저런 의식의 침공은 직접 당하기 전에는 이런 게 있다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하고 막아낼 방법도 없다.

"이 높아진 의식의 침공이 있으리라는 걸 미리 예측했다면, 절제를 작동시키는 강한 힘을 중지시키고, 욕망이 지 꼴리는 대로 준동할 때 몸과 마음까지도 그 욕망에 따르게 했어야 했단 말인가?" 단순히 의식의 침공만 막을 목적이면 저 방법이 최선일 수 있다. 그런데 저랬다가 모든 감각이 최상층으로 올라가게 되면 능력도, 경제력도 없는 놈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나?(경제력이라곤 전혀 없는 백수가 고가의 위스키, 와인 맛에 탐닉하는 감각을 키우는 건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인 것과 똑같은 거다.) 더군다나 나는 저런 최상층으로 올라간 감각을 뒷감당할 능력이 없는 병신장애인인데?

하여튼 재차 강조하지만 저 상황은 안 뚫리는 방패와 못 뚫는 것 없는 창의 대결, 즉 모순의 전형적인 격전장이었던 거다. 비루한 삶에서 버텨내기 위해 나름 대비를 하면 결국, 의식이 극단적으로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의식이 결국엔 자신을 공격하게 되는 정말로 버거운 상황이 도래하고, 이런 의식의 침공을 막을 목적으로 욕망이 가는대로 몸과 마음을 움직였다면 의식을 제외한 모든 것들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 도래하고... 빼도 박도 못하게 시리 한 번은 필히 맞이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하여튼, 저 상황이 도래했다 보니, "아, 이런 상황이란 게 있구나, 아, 이거 큰일났다, 정말 큰일났구나" 이렇게 정말 땅을 칠 만큼의 후회를 했었다.(후회가 아니라 통곡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이 하늘을 찌를듯한 비판의식이 나를 공격해 대는데, 의식이란 게 금방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애 키우는 부모로 비유하면, 어릴 적에는 그렇게 부모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해 부모의 콧대와 기대를 높여 줬었던 애가, 커서는 희대의 비행청소년이 돼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부모에게 높았던 콧대와 기대만큼 반비례하는 씻을 수 없는 좌절, 분노를 선사하고 부모 얼굴에 똥칠한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부모가 개인생활은 완전히 포기하고 온갖 뒷바라지하면서 자식을 검사로 출세시켜 놨더니, 그 애가 쌍심지를 켜고 부모에게까지 탈범, 범법행위 색출이라는 검사의 직업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평소에 부모에 대해 강한 무의식적 원망이 있던 애면 저렇게 될 수도.)

하여튼, 나의 이 비판의식은 내 자존심을 세우고 내 지적능력을 키우는 등 내게 손해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줬었지만(비판정신이 살아있는 선진 민주시민이라는 나름의 자긍심이라고 해야 하나?) 내한테까지 그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로 공격해댈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었기에 이 공격을 당할 때에는 정말 참혹했었다. 무슨 대단한 사건인 것처럼 이렇게 글을 적고 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우울인들이 겪기 마련인 과도한 죄의식에 의한 단순 자기학대, 자기모멸에 지나지 않았던게 아닐까?싶기도 하다ㅋㅋㅋ

아마도 내가 종교를 가졌었다면 이 과도한 비판의식을 종교가 흡수했을 것이기에, 이 절망을 버텨내는 과정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성 싶다. 비판의식과 이성을 둔화시키는 종교라는 도구를 나는 사는 동안에 획득하지 못했고, 밖으로 나가려는 에너지만 가득한 젊음이라는 공간에 '나=병신장애인'이라는 열등한 내 자신을 인정할 공간이 있을리 만무했으니 내가 이렇게나 엄청난 공격을 당한 것이고.

인간은 남탓이 기본으로 돼 있는 개체다. 힘이 넘치는 젊음일수록 더 그렇다. 이러니 '나=병신장애인'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젊은 내 마음은 "내가 아니라 너희가 무지해서, 어벙해서 그런 거야"라는 타인은 낮추고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자가당착적인 과잉의 비판의식을 더욱 더 증대시킬 수 밖에 없었을 게다.

그런데, 아,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던 거다~ 비록 사상누각성 성격이 짙었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버팀목이었다고 할 수 있는 나의 비판의식이, 동료격인 같은 비판의식에 의해 무참히 개박살이 나면서 내 정신을 방어하던 최후의 방어수단이 사라지고 마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던거다.

으아~ 그동안 저걸 보호책으로 겨우 겨우 버텨 왔었던 나의 근원적인 초라함이 외부로 노출돼 버린 상황이 돼 버리고 말았으니 내가 얼마나 당혹스럽고 고통스렀을까나? 신경이 노출되어 지독한 치통이 느껴지던 이빨이라고 해야 할까? 어쨋든, 어렴풋이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런 상황이 대재앙의 형태로 도래하고 만거였다. 그리고 그 대재앙의 시간도 엄청 길었었고.

푸시킨의 표현대로 지나고 나니 저것도 그리움이 되긴 된다. 신기하다. 이런 황량한 삶을 살아 왔었던 내가 이런 좋은 감정을 감히 느껴도 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건 자연계의 질서에 반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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