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단 나은 삶을 살고 있으려나? ②
'내 삶에 희망을 기대해선 안된다'라는 건 어렸을 적부터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리라고 짐작이라도 했었더라면 진작에 찍소리 안하고 자살했었지 싶다. 젊었을 적에 이런 걸 알았어 봐라. 자살에 안 들어갈 젊은이는 하나도 없을게다. 고로 혈기로 가득찬 젊음은 태생적으로 희망에 대한 과잉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는거다. 그래야 더 힘이 나고 그 젊음을 지탱할 힘이 나오게 된다. 뭘 모르는 젊음에겐 '희망없음'의 상태를 견뎌내는 힘이 그리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천적 장애인은 '몇 살 때 그렇게 되었느냐?'에 따라서도 자살율이 엄청 달라질게다. 아마도 20대초반~30대초반의 자살율이 최고로 높을 것 같다. 60대이후도 마찬가지고... TV에 어느 유방암 완치자가 나와선 "항암제 치료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 미리 알았었더라면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았을 거다"라는 말을 하더라. 그 프로를 보면서 "어라~ 저 아줌마가 내가 내 삶에 대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저렇게나 정확하게 찝어서 대신 말해주는구나~"싶어 좀 어안이 벙벙~ 신기, 공감의 기쁨을 느꼈었던 기억이 있다. 나역시도 희망없고 절망, 좌절, 우울, 무기력, 할 일없음의 삶이 이런 건줄 알았었더라면 진작에 자살했었을텐데 그 마음을 저 아줌마가 대신 표현한거니까. 암환자가 아니면서도 저 여자 말에 나처럼 잘 공감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잘 없었으리라... "뭐요? 당신도 그렇게 공감했었다고라~ 그럼, 당신도 나같은 불행한 삶을 살았던 말이 되는 거요~ 다음에 같이 소주라도 한 잔..." 항암제 약의 색깔이 빨간 색이라 항암 치료가 끝난 지금도 김치는 쳐다보기도 싫다던 말도 하던데---저 아줌마 가족들은 백김치 정도나 먹었을까? 일반 김치는 먹기가 좀 힘들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해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자기들 끼리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일테니...---물론, 잘 견뎌 냈기에 저런 얘길 할 수 있는 거겠지만, 어릴적 부터 희망이 없었던 삶을 살아왔었던 내같은 사람들은, 그 약이 무색이 아니고 그래도 빨간 색을 띄어줬었다는 거에도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왜냐? 그래도 빨간 색이 무색보다는 피해의 강도가 세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항암제가 무색이었다면 김치가 아니라 물을 미워하게 됐을 수도 있을 것이기에 빨간 색이 주는 피해보다무색이 월등하게 컸을 거라는 의미다. 만일, 항암제가 무색이었고, 저 아줌마가 병에 더 찌들려, 의식이 정상상태를 벗어나 더 병적인 퇴행을 하게 됐었다면(남 얘기할 것 없이, 내가 이런 차원의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병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공기까지도 미워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보다
불행, 우울한 거에게서 삶의 위안을 내 삶이 딱 저런 경우였었는데(중병자, 장애인들 역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자살을 안 해 늘그막에라도 이런 좋은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해서 이 삶이 정말 비루한 삶이라는 사실이 부정되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본질이 변하지 않으니 부차적인 게 아무리 좋아도 근원적인 만족이 안된다고 할까? 쩝, "그나마 부차적인 느낌이라도 좋아졌다는 게 어디냐~"면서 이 사실에 만족하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하긴 해야하리라. 이렇게 내 삶이 이 병때문에 이런 식으로 절망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었고 오랫동안 이 절망에 휘둘리다 보니 왠걸~ 이 절망에 나름의 호감(?)도 생기는 상황에 이르게 됐지 싶다. 이렇게 삶에 나름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세상에나, 이런 류의 여유란 게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다ㅋ) 절망에 대한 생각이 타인으로 확장되어,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떤 걸 절망이라고 말하고 있나?"라는 호기심, 궁금증이 생겨 버렸다. 이 뇌란 놈이 이 비루한 삶을 버텨 내려고 또 자기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 냈다는 말도 성립될 것이다. 절망이란 건 다른 사람의 입으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내용이니 책을 좀 찾아 봤다. 전에는 관심분야가 자살이었는데 이제는 그게 절망으로 형태가 살짝 바뀐 거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이건 절망 뒤에 생겨나는 살포시한 희망의 위력이지 싶다.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살은 여전히 남아있으니, 그 상황에 '타인의 절망'이라는 관심종목이 하나 더 추가된 거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싶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싶다. 사고의 구색이 내 나름 다채로워 졌다는 의미니까.(뇌는 단조로움을 정말로 싫어한다.)
책을 좀 찾아 봤더니만 역시나 사람의 속성상, 절망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놓은 책은 잘 없더만. 절망은 역시 자신의 내면 속에 꼭꼭 숨겨놓는 기질의 것이지, 밖으로 풀어놓는 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이 넑두리성 글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이런 절망을 나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한 사람이 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절망자들은 절망을 종교로 달짝지근하게 포장한 뒤에야 그 내용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절망은 무서운 것이니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삶 얘기와 공감하다 이 책을 읽게 됐던 건 TV의 책소개 프로때문인데, 그 프로에 나온 패널이 이 책 소개를 하면서 "얼마나 수용소의 삶이 자극이 없는 곳이었으면 굴뚝의 연기를 보면서, 해질녁 노을을 보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더라"라고 말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하여튼 그 패널이 들려줬던 저 말은 "항암제 고통이 이렇게 클 줄 알았더라면 항암제 치료를 안 받았을 것"이라는 그 암완치자의 말처럼 내가 100% 공감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당연히 읽어볼 수 밖에 없었다. 삶의 일상에서 저런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지금 이 비루한 삶에서 느끼는 은은한 행복감과 마찬가지로 무저갱의 절망을 오래 버텨낸 사람이라면 반드시 느낄 수 밖에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느끼는 감각이 개화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무저갱의 절망이 선사하는 황량함에 자살, 아니면 병사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재소자들의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를 일컫는 '실존적 공허'라는 개념이 나온다. 물론, 육체적 고통이야 전쟁상황, 더군다나 그 상황에서의 수용소, 더군다나 사람을 죽이기까지하는 최악의 수용소의 삶과 내 것을 비교한다는 게 도저히 말이 안되는 거긴 하지만, 2차대전 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가 말하는 비루한 삶의 대용어휘인 실존적 공허란 말이 내게도 똑같이 적용되는구나 싶어 꽤 씁쓸했었단 기억이 있다.(이 씁쓸함은 여전하다) 오히려, 나는 전쟁상황이 아닌 평화상황에서 이런 실존적 공허를 느끼고 있으니 정신적 상처는 아마도 내 쪽이 더 막대할 수도 있을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살고 있는 시절은 전쟁상황이 아니니 다른 쪽으로 이 정신적 상처를 다독거리는 게 가능하긴 하리라. 그리고, "그동안 병신장애인으로 존재하면서 받은 수치심, 모욕감, 초라함 등등에 견주면 이깟 씁쓸함따위야 뭐, 애들 장난이지~"이러면서 그냥 피식~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게 된 것 같기도 하고.ㅋ(이게 바로 글쓰기의 치유효과라고 할 수 있는 '사고의 재정립 효과'리라) 어쨌든 비루한 삶이지만, 살아있음의 관성, 습관을 거부할 용기가 없어 마지못해 삶을 연명해 가고 있는 개체들에게 그래도 이 말은 하고 싶다.(지랄한다. 자기가 뭐가 되는 것처럼 왜 이렇게 오버질을 하지???) 견뎌내다 보면 희망은 내게 사치라는 걸 직접적으로 체득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고, 이 날은 최대의 절망을 경험하는 정말 인생 최악의 날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환골탈태, 변태의 새 희망이 시작되는 날일 수도 있다는 거... 이런 고통의 나날은 자기가 해석하기 나름이고 그렇게 어째 어째 버텨내다 보면 고통에서 기쁨이 느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 과정은 정말 좆같다는 건 분명한거고, 결과적으론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 반드시 온다는 말은 아니고, 도중에 무슨 기대를 가졌다가는 저런 날이 더욱 더 늦춰질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더욱 더 늦게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게 되면 그 기쁨은 늦어진 만큼 배가되리라는 장점도 있긴 있을 것 같다) 난 이 무저갱의 절망의 과정을 그럭저럭 통과한 것 같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거지, 다시 가서 또 겪으라고 하면 그냥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 싶다. 아마도 저 기분은 겨우 겨우 휠체어 삶에 적응된 후천적 장애인에게 "교통사고 직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 것과 비슷한 것일 거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이나 나나 현재의 삶이 비루해도 살아갈 수 있는 건 그 초절정의 절망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던 그 때보다는 지금이 분명히 낫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로 돌아가서 그 무저갱의 절망을 다시 겪으라고 한다는 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매 한가지라는 말이다.
이건 항암제 고통이 이렇게 클 줄 알았더라면 항암제 치료를 안 받았을 것이라고 한 그 암완치자의 말과 100% 일맥상통하는 말일게다. 어쨋든 "견딜거냐? 관둘거냐?"의 선택은 자신의 몫이고 견딜거라면, 그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러우니 희망을 미리 버릴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이다. 아니면, 종교를 가지던가... |